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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국가] 사우디아라비아(1) -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중동국가

by 백곰고미 2024. 3. 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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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 이슬람교

사우디 아라비아의 고대 역사는 인류 역사의 여명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슬람교가 바로 현재의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 지역에서 7세기 초에 생겨났다.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에서 발흥한 아랍 왕조들에는 정통 칼리파조, 우마이야 칼리파조, 아바스 칼리파조, 파티마 칼리파조 등이 있으며, 또한 무수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이슬람 왕조들이 이 곳에서 번성했다.

 

이슬람교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현재의 사우디 아라비아가 위치한 아라비아 반도가 소수 부족이 사는 사막 지역이었다. 그러다 이슬람교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571년에 메카에서 태어나고, 7세기 초에는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다양한 부족들을 통일하고 이슬람교 공동체를 창조했다.

무함마드가 632년에 세상을 떠난 후,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은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까지 급격히 영토를 확장했다. 이로 인해 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떠올랐고, 이슬람교는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갔다.

아랍인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하자즈 지방에 라쉬둔, 우마이야, 아바스, 파티마 등의 칼리프를 세웠다.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메카와 메디나는 메카의 샤리프들이 통치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외부 제국의 간접 통치를 받았다.

10세기에는 시아파의 한 계파인 까라마타파가 페르시아 만에서 강력한 세력이었다. 930년경에는 메카를 침공하여 약탈했고, 이로 인해 이슬람 세계가 변화했고, 1077년에는 아랍의 압둘라 빈 알리 알 우유니가 까라마타파를 물리쳤다. 우유니드 제국은 전성기를 누렸지만, 1253년에 멸망했고, 그 후에는 자와니드 왕조가 동부 아라비아를 지배했다. 15세기에는 자브리드인들이 자와니드를 몰아내고 호르무즈 지방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였으며, 이 전쟁은 1507년에 끝났다. 이후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17세기에는 소규모의 반란이 있었지만 모두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 오스만제국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홍해와 페르시아 만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술탄제를 선포하여 포르투갈인들의 홍해와 인도양 침입을 막아냈다. 이후 대략 400여 년 동안 중앙 정부의 권력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면서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 지역에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일관되지 않은 정책들은 이후 20세기의 아라비아 반도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부족들 간의 분쟁을 격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 사우드 가문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 왕실, 사우드 가문은 1744년 중앙 아라비아의 네지드 지방에서 뿌리를 내린다. 가문의 시조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인 와하비즘의 창시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와 연합하여 18세기에 결성된 동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팽창 정책과 엄격한 전제군주정의 기반이 되었다.

사우디 제 1왕국, 다른 이름으로 디리야 토후국은 1744년 리야드 근처에 성립되었다. 빠른 성장을 거듭하여 1803년에는 메카를 정복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대부분을 획득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 1818년 알리 파샤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19세기 후반에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다시 국가를 세운 사우디 제 2왕국은 네지드에 위치하며 1824년에 건국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은 라시드 가문과의 분쟁으로 1891년 쿠웨이트로 피난을 쫓겼다.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여전히 아라비아 반도를 통치하는 동안 독립 운동이 강해졌다. 1902년, 압둘 라흐만의 아들 압둘 아지즈, 후의 이븐 사우드가 리야드를 재창건하여 네지드로 되돌렸다. 그 후 사우디 제 3왕국을 세우며 1913년에는 이크완의 지원으로 알 아샤 지역을 정복했다.

1916년, 메카 샤리프였던 후세인 빈 알리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중 영국의 도움을 받아 반오스만 운동을 시작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의 패배로 헤자즈 왕국 왕이 되었다. 이븐 사우드는 아랍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알 라시드 가문과 싸웠다. 1925년 이븐 사우드는 네지드를 획득하고 헤자즈 왕국을 병합했다.

헤자즈 왕국을 정복한 후, 이크완들은 와하비즘의 영향력을 확장하여 영국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븐 사우드의 반대로 이에 대한 영국의 위험성을 인식했다. 동시에 이크완과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이븐 사우드의 현대화와 외국 이주 정책에 실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1929년 사빌라 전투에서 이들은 진압되고 지도자들은 처형되었다. 1932년 9월 23일, 헤자즈와 네지드 왕국은 통합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성립되었으며, 이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국 기념일로 기념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 - 헤자즈와 네지드왕국 통합 이후

1938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규모의 석유 발견으로 경제적 부흥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국가는 석유 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인한 제노포비아와 정부의 부정부패로 인한 국가 부채가 증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1953년에는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국왕직을 승계하고, 1970년대에는 석유 생산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 기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긴밀한 외교적 관계를 형성하고, 국내 인프라와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의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성장으로 내부적 불안이 가중되었다.

1980년대에는 아람코의 미국 지분 인수와 외교적 협조로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와 실업률 등의 사회적 불만이 증가하며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 비난과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2000년대에는 테러 공격과 시민 불만 등의 내부적 문제가 지속되었다. 압둘라 국왕은 일부 개혁 조치를 시도하였으나 권력은 여전히 왕가에 집중되었다. 이후 여성 선거권이 허가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불만이 존재한다. 현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국정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는 'Mr. Everything'라는 별명을 얻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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